작품에 대하여

Q. 이번 비평을 준비하면서 사진이 발명되었던 시점에서부터 동시대까지의 역사를 훑어보았는데요. 그 거대한 역사가 안재영 작가님이라는 개인의 미시적인 삶 안에서 비슷한 궤를 그리며 나란히 펼쳐지고 있다는 게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이미지 생성 방식의 변화가 개인의 삶 속에 어떻게 편입되고 작동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요. 그렇게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건 우리가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로 이행되는 격동의 시기를 그대로 겪어온 세대이기 때문이겠죠?

동시대에는 이제 다양한 의미와 맥락의 '사진'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지시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전통적인 맥락에서의 사진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한 낯설고도 신비한 이미지들도 섞여 있죠. 거기에 더해 과거의 것이 하나의 스타일이 되어 오늘날 유행하는 이미지로 소비되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그 여러 종류의 사진들이 작가님 내면에서 분류되거나 변별되기도 하나요?

A.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들>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몰래 잠입한 폴란드 레지스탕스가 찍은 넉 장의 이미지를 예로 들면, 명징하게 드러난 수용소의 환경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절실한 객관적 사실이 전달된 것이 아닌, 어둡고 흐릿하지만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담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품고 있기에 우리는 사진을 보면서 더 사실적인 인지를 하게 됩니다. 어떻게 인지될 수 있는 사진인가는 단순히 기술적인 메커니즘으로만 설명 될 수 없으며, 상황과 연출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 된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플랫폼에서 누가, 어떻게, 무슨 의도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노출된 사진은 심지어 생성 모델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을 겁니다.

주텍스트를 보완하는 텍스트인 제라르 주네트의 ‘파라텍스트’ 는 사진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지닙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진을 생성할 수 있는 수단의 확장은 주장하고자 하는 이의 사실적 근거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기에 주변의 역할들이 그것을 뒷받침 해줍니다. 사진의 모호성이 강해지고 그저 정동을 운반하는 매체로 작동하는 현주소에서 텍스트는 그것을 분류하는 역할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텍스트를 통해 단순히 이미지의 설명이 동반되는 것이 아닌, 세밀한 기록과 기술들이 객관적 지표와 정보 전달의 확실한 근거를 마련합니다. 아담 블룸버그와 올리버 차나린의 시리즈 <THE DAY NOBODY DIED>에서, 그들은 종군기자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 사진을 촬영하게 됩니다. 전쟁 사진이란 전형적 형식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전복시켜 기록한다는 행위만을 가져와 작업을 진행합니다. 관람객이 보고자 하는 이미지를 배반하고 전쟁 사진의 모습을 띄지 않더라도, 제목, 설명 등의 텍스트가 상황을 설명하며 작품의 사실적인 힘을 뒷받침 합니다.

사진이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이어질 때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기대하는 단순한 상황이 생깁니다. 오랜기간 기록의 매체로 군림하던 사진은 모두가 거짓의 모습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한 채 오로지 진실만을 강요하여 사진은 그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집니다. 또는 소셜 미디어에 부유하는 이미지들에서는 자극적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쌓이는 수많은 레이어를 망각한 채 스펙타클에 속아 거짓을 외면하고자 합니다. 앞서 나열한 예시와 설명처럼 여러 형태의 사진들의 분류는 상황과 연출 그리고 의도에 따라 (이미지의 모습과 상관없이) 나뉘게 된다고 봅니다.

Q. 기술 발전과 함께 인간은 어떤 대상과 그 대상을 재현한 이미지를 마치 현미경을 통해 보듯이 확대하여 볼 수 있게 되었죠. 어쩌면 벤야민이 말했던 '시각적 무의식'적인 영역까지도요. 그런데 그런 변화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어떤 이미지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 것 같아요.

작가님의 노트에서 “이미지를 구성하는 단위나 원리가 단일하지 않게 되면서, 그 본질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어떤 상태로든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라고 서술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아마 노트에서 '본질'이라는 단어는 이미지가 생성된 최초의 방식을 가리키고자 사용하신 것 같은데, 이런 동시대의 이미지 환경에서 과연 '본질'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히토 슈타이얼이 동시대 이미지는 “당신이나 나 같은 어떤 것”이 되었다고 선언한 것처럼, 이미지는 끊임없이 변모하고 유동하게 되었죠. 복제와 유통이 반복되다 보면, 어떤 이미지의 원류를 찾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거나 그런 작업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이 오기도 하잖아요. 어떤 이미지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그 시발점과 생성 방식을 안다고 해서 그 이미지의 '본질'을 과연 알았다고 할 수 있는가도 모호하고요. 이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작가님이 지적하셨던, 기술 변화에 따른 사진에 대한 인식 변화로 설명되는 것 같기도 하는데요. 이런 논의에 대해서 작가님의 자유로운 생각을 듣고 싶어요.

A. 대상을 선명하게 담아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사진은 점점 더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지만 그것의 끝에는 결국 작은 입자 혹은 픽셀의 집합입니다. 연속적인 자연의 데이터는 분절되어 이산적 형태로 치환되고 사진이란 것 자체가 대상의 본질을 담아내기 보다는 비슷한 것을 보여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러한 역할을 지닌 카메라가 만들어낸 이미지, 즉 사진은 현실의 대상을 모사하여 본질을 담아내기 보다는, 관념화된 세상을 매개하는 복사물, 혹은 추상화된 개념을 그려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전에는 필름을 현상하여 인화지를 통해서만 사진을 소비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사진을 소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프린트, 디스플레이 등 여러 출력 방식의 존재는 이미지를 구성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제안합니다. 이미지란 것 자체가 모호해지고 고정된 형태로 이야기 될 수 없는 상황에서 각각의 다른 출력 방식으로 표현되는 대상은 매순간 변모될 수 있는 잠재태 상태에 놓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미지에 흡착된 대상은 이미지의 변화에 휩쓸려 같은 변화를 동반하기에 대상을 구성하는 단위들에 물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전 작업 <Hwanggok_Colorized>의 경우 이미지 구성 요소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대상 본질을 담아내어 출력 방식의 차이와 상관없이 어떠한 보증을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이전에 포킹룸에서 기획한 <합성계의 카나리아 2022>전시에 참여한 <Hwanggok_Colorized)> 작업은 생성 모델의 구조를 기반으로 대상의 객관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생성 모델의 구조에서 Latent Space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은 잠재 공간이자 블랙박스(어떤 원리인지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주어진 값들을 토대로 끊임없이 학습의 과정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GAN, VAE와 같이 다양한 학습 형태에 따라 방식의 차이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생성 모델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상의 정수를 점진적으로 찾아냅니다. 생성 모델의 목적은 한정된 표본 집단을 무한히 증식하여 모집단을 완벽히 파악하고자 합니다. 만약 생성 모델이 무한히 증식하여 모집단에 가까워진다면 잠재 공간 속에 존재하는 정수는 대상의 이데아에 무한대로 수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충분히 학습된 생성 모델로 만들어진 대상은 그 대상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보며 <Hwanggok_Colorized>는 흑백의 이미지를 생성 모델을 통해 색을 입혀 보편성(객관성)을 획득했습니다.

이미지를 인식하기 위한 선행하는 과정 속에서 결과되는 법칙이 없다면, 어떠한 객체도 대응할 수 없는 그저 감각의 주관적 유희로만 보일 것입니다. 특히 디지털 이미지는 렌즈를 통해 만들어지는 상 보다 노이즈에서부터 직조되어 만들어진 상들이 상당한데,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사진이라 여기며 현실을 모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의 기반 또한 일종의 법칙이며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이미지의 본질 또한 바뀌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Hwanggok_Colorized>에서는 생성 모델이 그 역할을 했으며, <미도래>에서는 단일하지 않고 언제나 변모 가능성의 여지를 주는 개별 레이어들이 이미지를 인식하기 이전에 선행되는 법칙을 제공했습니다.

https://www.forkingroom.kr/exhibition2022